수술실에 폐쇄회로(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된 지 하루 만에 폐기되면서 법안을 둘러싼 찬반 양측 간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환자 단체는 수술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 침해와 각종 의료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CCTV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CCTV 설치로 의료인의 진료가 위축돼 환자를 위한 적극적인 의료행위에 방해가 되며 의료진과 환자의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 찬성 /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대리수술 등 불법행위 감시, 불필요한 의료분쟁 줄여야
수술실은 의사가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를 살리는 신성한 장소다. 그러나 최근 수술실을 바라보는 환자들의 눈초리가 곱지만은 않다. 외부와 차단된 수술실에서 환자가 전신마취로 의식을 잃으면 집도의사가 아닌 생면부지의 다른 의사·간호사·간호조무사·의료기기업체 영업사원 등이 수술하는 `무자격자 대리수술` 또는 `유령수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술실에서의 성폭행·성추행·생일파티·인증사진 촬영·집도의사 무단이탈·의료사고 조직적 은폐 등이 알려지면서 환자들의 불안은 더욱 커졌다. 어린이집 안전과 인권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 CCTV 설치가 화두가 된 것처럼 수술실에도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여론이 국민 10명 중 9명에 이른다. 의료계는 CCTV가 의식되어 수술에 집중이 안 되고, 방어진료로 환자가 피해를 입고, 촬영된 영상이 유출되면 의사와 환자에게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EBS `명의`나 의학방송에 출연한 의사들은 CCTV가 아닌 정밀 카메라 몇 대로 촬영해도 수술에 집중한다. 수술실은 환자의 사생활 공간일 수는 있어도 직업이 의사인 사람의 사생활 공간으로 보기는 힘들다. 수술실 CCTV 촬영을 위해서는 반드시 환자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프라이버시 침해가 걱정되면 동의하지 않으면 된다.
의료법에는 의사가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을 하는 경우 `진단명, 수술의 필요성·방법·내용, 수술의 후유증 또는 부작용 등`을 환자에게 설명하고 서면 동의를 받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만일 여기에 수술실 CCTV 영상까지 있다면 고위험 수술 후 환자가 의료사고 의혹을 제기하더라도 신속한 확인을 통해 불필요한 의료분쟁을 줄일 수 있다.
의료계는 CCTV로 촬영된 환자의 은밀한 신체 부위 영상이 불법 유출되어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응급실에서도 동일하게 촬영 영상의 유출 우려가 있다. 그런데도 최근 의료계는 응급실 CCTV 설치 확대와 비용 부담을 국가에 요구하고 있다. 의사와 환자의 안전과 인권 보호를 위한 CCTV 설치가 응급실에서는 되지만 수술실에는 안 된다는 논리는 모순이다.
최근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수술실 CCTV 설치 관련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발의 하루 만에 의료계의 항의에 굴복한 공동발의자 절반이 철회해 법안이 폐기됐다. 이후 6일 만에 15명의 공동발의자가 재발의하는 우여곡절까지 겪었다. 앞으로 CCTV를 활용한 수술실 안전과 인권 보호 방안이 국회에서 신속히 입법화되기 바란다.
■ 반대 / 이세라 대한의사협회 기획이사
의료인 관리감독 수단 충분…신뢰깨지면 수술 기피 늘것
극히 일부에서 발생한 대리수술 사건으로 수술실 내 CCTV를 설치하자는 요구가 나오고 있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결코 최선의 방법이 아니며 득보다 실이 크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을 고민해볼 수 있다. 수술 시에는 의사를 동반해 참여하는 의료인력들이 반드시 있다. 그들의 눈과 귀를 막을 수 없으므로 입도 막을 수 없다. 그리고 현재 대부분의 병원에는 복도나 입구에 CCTV를 설치해 이동과 안전 등을 관리하고 있다. 이 자료들만 이용해도 충분하다. 수술실 출입구에 지문인식장치를 만드는 것 또한 출입자 대부분을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 매체에 보도된 사례들은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및 여러 의료인력 모두 합세하여 비상식적 행위를 저질렀다. 의사 개인만 감독해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의료사고의 증거 수집을 위해 CCTV 설치가 필요하다고도 하는데, 실제로 의사들에게는 의무기록을 상세히 작성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런 기록과 관계자들 증언으로 의사들이 의료사고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CCTV로 의료사고의 영상 증거를 수집한다고 치자. 아마 환자와 의사 사이의 불신, 그로 인해 중증환자 진료나 수술 기피가 만연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소송이 폭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 오히려 CCTV라는 감시 수단이 있으니 환자는 안심하고 의사에게 몸을 맡기게 될 것이다.
환자의 신체 중요 부위가 화면상에 노출되고 이 영상정보가 외부로 유포되는 경우도 충분히 예상된다. 저장된 영상들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을 현실적인 방법은 전혀 없다.
--> 보안전문업체에 외주를 주던가 유출 되지 않도록 방법을 강구해야한다.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은 CCTV에 의한 기본권 침해가 광범위해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범죄 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공공장소에서만 허용하고 있을 뿐이다. 의료행위를 소매치기나 강도 등과 같은 선상에서 보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하면 의료행위의 선의성(善意性)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없는 것이다. 현재까지 외국에서도 수술실 내부 CCTV를 강제 촬영하는 사례는 찾을 수 없다. 심지어는 인권 보호를 위해 안면인식도 금지하는 세상이다.
--> 의료행위의 선의성을 주장하기에는 악용한 사례가 수없이 보도되고 있어 국민들의 불안은 여전하다. 따라서 의료계 자체적으로 정화행위를 하고 캠페인을 하지 않는 이상, 선의성을 주장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믿지 못할 의사에게 건강과 치료와 수술을 맡길 국민은 없다. 누가 뭐라 해도 의료인은 가장 신뢰받는 직업 중 하나다. 더 많은 환자를 살리려면 의사에 대한 신뢰가 파괴되지 않길 바란다. 오히려 의사들이 과도하게 많은 진료, 많은 수술을 해야 하는 현 구조를 개선하는 게 시급하다. 그래야만 환자와 의사 간 신뢰관계도 좋아지고 의료사고의 위험성도 줄어들며 불법적인 의료행위도 감소할 수 있다.
--> 환자와 신뢰 관계를 가지고 있는 당당한 의사는 CCTV 촬영을 해도 문제 없다. 무작정 믿으라고만 한다면 요즘 세상에 누가 믿겠는가. 보험성 대책을 마련해놓는 것은 소비자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당연한 일이다.
국내 외과의사 6000명. 이 중 생사를 오가는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는 일부에 불과하다. 주 52시간 근무제 준수도, 연차 25일도 없이 헌신하고 있다. 이들에게 감시카메라를 들이댄다면 몇 명 남지 않은 외과의사의 씨가 말라버릴 것이다.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다 태우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가 현명히 판단해야 할 시점이다.
전신마취를 하여 환자가 의식이 없을 때 CCTV 촬영을 의무화해야 한다. 환자가 의식이 있는 상태의 수술은 비교적 덜 위험하며, 의사도 환자가 보고 있기에 이상한 행동을 취할 수 없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나를 보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심리적으로 있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투명인간이 된다는 상상을 해보라. 그렇다면 당신은 평소처럼 법을 지키고 다닐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는 눈이 없으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만 집중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정부패와 비리가 많이 일어나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따라서 일부 의사들의 비윤리적, 비상식적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전신마취를 하는 수술실에서 CCTV 촬영은 의무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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